용서한 줄 알았다
용서한 줄 알았다.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해서.
그래서 전보다 나아지겠지 하고 희망을 갖고 관계를 다시 이어갔다.
근데 다시 또 똑같은 행동을 한다.
같은 일로 문제가 됐고, 그 문제는 나하고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들어도 문제가 될 행동들인데..
나는 몇 번을 참고 받아주고 품어야 하는거지?
정말 미안한거면 이렇게 빨리 되돌아가지 않을텐데…
얼굴도 보기 싫다.
얘기도 하기 싫다.
용서란 쉽지 않다.
그런데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책을 보며 많은 찔림?이 있다.
왜냐면.. 나는 저자가 말하는 것에 잠깐 하는 듯 하지만 끝까지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희망이 기대함은.. 오늘 읽은 마지막에 상한 존재라는 진리. 그 이야기를 해줄거라고.
그 이야기에 지금 내 마음의 상처, 분노가 어떻게
풀어져 갈지…
내일 읽을건데. 내 마음의 생각과 태도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뭐 그대로 일수도.
더 나빠질 수도?
도전과 변화를 시작할 수도.
있을거 같다.
그냥… 정말 용서한 것 같았는데 다시 잘못했다고 하는 행동을 하는 두 사람에게 화가 나는 나를 보는 것도 힘이 든다.
이 분노를 엄마한테 말 하면 이해를 못한다.
그래.
누가 내 이런 부분까지 이해하고 들어주겠어.
그래서 이 공간이 내게 참 중요하다.
📖
우리가 선택 받았다는 진리를 주장하고 계속 널리 알릴 때,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다른 사람들 역시 선택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깊은 열망을 곧 발견하게 되네. …. 그들 역시 선택 받았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지. 다른 사람들 역시 선택 받았음을 발견하는 것. 그건 선택 받은 사실이 주는 커다란 기쁨이네.
52-53쪽
자네가 축복 받았음을 주장하지 않으면 자네는 곧 저주의 땅으로 내려가게 될 걸세. 축복의 땅과 저주의 땅 사이에 중립지대란 없네. 자네는 어디서 살고 싶은지 선택해야 하네. 그리고 그 선택은 순간순간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지. …. 바로 자네가 축복 받았음을 주장하는 것은 항상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싶은 깊은 욕망으로 이어진다는 말일세. 축복 받은 사람의 특징은, 그들이 어디를 가든 항상 축복의 말을 한다는 것이네.
69쪽
축복이란 것은 축복을 들은 사람들만이 줄 수 있는거지. 이제 자네에게 가장 어려운 진리에 대해 쓸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네. 우리는 모두 상한 존재라는 진리 말일세. 우리는 선택을 받았고 축복을 받았네. 우리가 진정으로 이 진리를 소유한다면, 그리고 그것에 대해 “네, 그렇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열린 눈을 가지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볼 수 있네. 이제 그렇게 해 보지.
70-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