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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신앙

우리 세대를 위한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감정론 (샘 스톰즈)

by 수니팡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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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작을 읽는다는 건 저자의 말대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한다는게 맞는 말 같다.
저자는 이 책이 이렇게나 좋은데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읽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신앙감정론> 책을 쉽게 풀어, 원본을 인용해가며 썼다.
이 책 아니고 원작을 샀다면 아마도,,, 읽다가 나눔해버렸을 듯,,😅😂🤣

저자는 달라스신학교 교수님 추천으로 에드워즈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열번정도 <신앙감정론>을 읽었다고. 😲🫢

나는 5~11장?까지 불편했다. 싫다는게 아니라 내 모습이 언뜻언뜻 언급됐기 때문에. 🥲
막 고민이 됐고, ‘이거 완전 난데?’라고 쓴 곳이 넘 많았다. 😅
뒤에 가면서 얼핏 이해가 됐다.
일단 책의 내용이 참 중요하고 좋지만 어렵긴 하다.
에드워즈의 글을 저자가 풀어주지 않으면 나는 아예 몰랐을거 같앙!!! 🥺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읽힌 듯)

뒤로 갈수록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어떻게 이 책을 샀지? 싶어서 올린 글을 보니 래리크랩 책을 통해서였군.
그래서 뭔가 비슷한 넉김이 났구나 했다.

에드워즈의 하나님을 기뻐함이 정말로 귀했구나.
내게도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솟구치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리고 며칠 전 처음 알게 된 기능!
바로 사진으로 글이 스캔이 가능하다는,,,
그래서 그간 좋았던 부분은 사진으로 찍고 말았는데.
오늘은 사진 스캔으로 많이 올려본다. 😊
몇 년뒤 읽으면 더 깊이, 더 새롭기 와닿을 거 같다.
요건 소장책이 확실해~~~🤭🤭

📖

참된 신자는 모든 죄를 미워하고 죄를 거부하고자 애쓴다. 반면에 거짓된 신자는 특정한 죄악만을 미워하고 거부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불경함과 요란한 옷차림 같은 것은 열심히 반대하면서도 탐심이나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에 대한 험담과 악독한 마음을 품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위선적인 열심을 품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죄는 신랄하게 비난하고 반대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다. 그러나 진정한 열정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서 오히려 더욱 신랄하게 비난한다."
거짓된 신자들은 특히 죄와 싸우는 일에서 일관성이 없다. 이들의 영적인 체험은 충동적이고 일시적이다. 어떤 때는 급격하게 고조되어 하늘에 이를 것 같다가도, "이내 갑자기 다시 추락하여 모든 것을 상실한 사람처럼 부주의하고 육신적이 된다. 이것이 바로 이 들이 말하는 신앙생활이다.“… 이런 사람들은 애굽에서 풀려난 이스라엘 백성과 같다.
… 반면에 참된 성도는 생수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와 같아서, 비가 오거나 가뭄이 드는 것에 영향을 받기는 해도 마르지 않고 항상 흘러나온다.“
172-173쪽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자기부인과 생명에 이르는 좁은 길을 가는 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사는 것이다. 위선자들은 성도처럼 살기보다는 성도처럼 말하기를 좋아한다.
193쪽

나는 복음의 교리를 사랑했다. 복음의 교리는 내 영혼에 푸른 초장과 같았다. 복음은 내가 가장 열망하고 내 안에 항상 있기를 바라 는 가장 값진 보화였다.
259쪽

존 파이퍼는 이렇게 쓰고 있다. "때로 우리가 성경으로부터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우리의 꿈이 그리스도의 흡족한 영광에 삼켜지는 것이다" 이 말이 많은 영혼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고 도전이 되지 않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가 할 수 없는 일을 능히 하시는 분, 매일매일 믿고 안심하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260쪽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한없이 기쁘게 다가오는 때가 많았다.
262쪽

구원을 받아 누리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좋다.
263쪽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선언하며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라. 그분이 그렇게 사랑하는 분이 아니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 아래 영원히 정죄를 받았을 것이다. 그분의 권능을 찬양하라. 그분이 무력했다면,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것이라는 소망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죄를 용서하시는 그분의 긍휼을 찬양하라. 그리스도의 보혈로 여러분을 깨끗이 씻기로 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은 여전히 자신의 죄 가운데 소망 없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는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하다!
자신의 빈 잔을 들고 다음과 같은 복에 겨운 탄원을 드리며 나아가라. "하나님, 제 잔을 넘치도록 채우셔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소서!
연약하고 방황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쁨으로 구하면서 나아가라.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길에 머물 수 있도록 저를 강건하게 하셔서 영광을 받으십시오!
속절없이 하나님을 바라면서 기도로 나아가라. "하나님, 저의 대적들과 어려움에서 저를 건지셔서 영광을 받으십시오!"
자신의 죄를 가지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며 나아가라. "하나님, 저를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풀어 주시고 제게 있는 탐욕과 시기와 정욕의 사슬을 끊으셔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기쁨과 즐거움을 향한 갈망을 가지고 간절히 부르짖으며 나아가라. "하나님, 충만한 기쁨으로 저를 채우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소서! 하나님, 다함이 없는 즐거움을 저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소서! 하나님, 하나님으로 제 마음을 흡족하게 하셔서 영광을 받으십시오! 하나님,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저를 사로잡으셔서…하나님의 위엄으로 저를 압도하셔서…...비교할 수 없이 무한한주님의 장엄함을 새롭게 알게 하사 저를 매료시키셔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소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광채를 제 마음에 비추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소서!"
278-279쪽

에드워즈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것은… 하나님의 기준에서 자신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하는 것이었으리라.
에드워즈 자신의 개인적 타락에 대한 지각과 인식은 하나님의 무한한 거룩에 비추어 자신을 바라본 데서 비롯되었다. 이런 에드워즈가 스스로에 대해 내릴 수 있는 합당하고 유일한 결론은 모든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가장 나쁜" 사람이고, "지옥에서도 가장 낮은 자리"에 앉기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에드워즈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우리가 자신의 영혼을 초자연적인 의로움에 비추어 바라보기보다는 우리끼리 서로 비교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너무 지나친 것인가?
에드워즈가 자기의 타락과 사악함을 생생하게 지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이런 지각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
여러분이 하나님 영광의 빛 가운데 행한다면 모든 흠과 결점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보일 것이다.…우리가 자신의 죄에 너무 익숙해졌고, 심지어 죄를 편하게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기껏해야 죄에 대해 불평하고 투덜거리는 정도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과 같이 온갖 인간중심적인 치료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에드워즈와 같이 청교도적인 사람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 다. "맘을 편히 가지게! 스스로에게 그렇게까지 가혹하게 하지 말게 나. 자네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자네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 단지 자네 자이상에 조금 문제가 있을 뿐이라네." 에드워즈가 자신에 대해 묘사한 것은 결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낮은 자존감" 이라고 부르는 것 때문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높은 수 준의 하나님 존중' 때문이었다고 단언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죄를 알게 한다. 그리고 죄를 알게 되면, 지옥이 합당하게 여겨진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시하기 때문에 지옥의 개념이 부당한 것처럼 보인다. … 에드워즈 자신이 타락했다는 사실 때문에 움츠러들거나 무기력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정결한 삶을 향한 그의 발걸음이 위축되지도 않았다. …. 그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끝없는 사랑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의 긍휼이 죄의 실체보다 더 분명하고 능력 있게 하나의 실체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84-286쪽

나는 요즘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순전한 기쁨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지, 이전보다 더 크게 절감하고 있다. 나 자신의 의로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것인지에 대해서도 더 깊이 느끼고 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즐거움, 친근함, 나의 행위와 체험, 마음과 삶의 선한 것들을 생각할 때마다 역겹고 거북하기만 했다. 나의 교만함과 자기 의와 같은 것을 이전보다 더 민감하게 느꼈고, 이런 생각들 때문에 매우 힘들었다. 내 주변 어디서나 끊임없이 일어나 고개를 쳐드는 뱀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말이 현대인에게는 얼마나 이상하게 들릴까!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을 성찰해 보는 것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이나 생활의 장점”이라고 하면서 자랑스럽게 뽐내고 드러낸다. 자신의 업적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즐거움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간다. 에드워즈는 그런 즐거움을 혐오할 뿐 아니라 역겨워 했다.
287쪽

에드워즈는 “의무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이 “너무 달콤하고 복된”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정도로 큰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가서 울어야 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이런 관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그가 하나님의 마음과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음으로써 그런 관점을 가 질 수 있었다.
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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