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아. 오랜만에 두꺼운 책을 얇은 책 보듯이 펼 때마다 기대하면서 재밌게 읽었다.
스캇펙 이름은 책을 볼 때마다 종종 언급 됐었기에 알고는 있었는데 책을 사게 된 건 작년에 내적여정 참여하고 나서다. 수업에서도 이런 저런 책을 추천 해줬었고, 그렇게 읽다가 그 안에서 스캇펙이 언급됐었나? 했다. 그래서 구입하고 바로 읽지 않고, 41살 때문에 힘들 때 그때 읽었는데 진짜 증맬루 좋았었다.
그래서 바로 저자의 책을 4권 더 샀지.
그 중에 3권은 쭉 이어서 읽었고. (그게 올 3월이었다.)
저자가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쉽지 않은 내용을 이렇게 이해가 되게 읽히게 하고, 페이지가 넘어가는게 어렵지가 않게 쓰다니.. 감탄에 감탄뿐!
4월부터는 다른 책을 읽느라 바빴다. 특히 5월부터는 꿈 관련 책을 읽는다고(지금도 읽고 있다.) 근데 얼마 전 무슨 책 읽을까 고민하다 전에 사두고 안 읽고 남은 스캇펙 책 1권이 보인다.
그래서 무작정 꺼냈다. (아마 이 책이 마지막까지 남은건 두꺼워서 였을거다. ^^)
무슨 내용의 책인지도 모르고 읽었는데 목차부터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공동체”에 관한 책이고나. 속으로 하하하^^; 관심 없는데 라며..
아니, 근데!!!????
이렇게 재밌을수가 있나요?!?!?! 증맬루?!
오랜만에 저자의 책을 읽으며 다시 반해부려떠.
그동안 읽었던 저자의 책에서 보지 못한 어린 시절 얘기가 눈에 띄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대체로 행복했다. 안정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부모님 모두 책임감 있고 사려 깊은 분들이라 온기와 애정, 웃음과 축복의 기운이 흘러넘쳤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감정은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이것이 유일한 문제였다.
부모님은 좀처럼 화를 내시는 일이 없었다. 어쩌다 어머니가 슬픔에 겨워 소리 죽여 잠깐 흐느낄 때도 있었지만, 당시 나는 이런 모습을 여성 특유의 감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성장하는 동안 나는 한번도 불안하다거나 걱정스럽다거나 두렵거나 우울하다거나, 어떤 일이 마음대로 잘 풀리지 않는다는 따위의 말을 부모님에게서 들은 적이 없다. 부모님은 보통의 선량한 미국인 답게 ‘단호한 개인주의자’였으며, 나도 그런 사람으로 성장해주기를 바라셨다.
요컨대 문제는 진정한 내가 될 수 있는 자유가 내게는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 집은 안전하기는 했지만, 내가 마음 놓고 걱정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우울해하거나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하게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을 만큼 안전하지는 못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십대 중반에 고혈압을 앓았다. 정말로 ‘초긴장’ 상태였다. 불안할 때면, 내가 불안해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 불안해졌다. 우울할 때면,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 때문에 더 우울해졌다. 그러다 서른 살에 정신분석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불안이나 우울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임음 깨달았다.
또 내가 어느 면에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의존적인 사람이라는 점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자 혈압이 내리기 시작했다.....” 29쪽
이런 그가 어릴 적 부모님이 보내준 기숙학교를 나와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학교를 다니게 됐다. 거기서 그는 ‘공동체’ 경험을 한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 가장 깊이 남아 있는 기억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를 꿈꾸거나 노력한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누구도 나의 변화를 바라지 않았으며, 그들 자신도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으로 살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이때 생전 처음으로 만끽할 수 있었다.” 35쪽
그리고 그 후에도 짧지만 강렬한 ‘공동체’ 경험을 한다.









그리고 이 부분이 참 좋았었다.
“그래도 릴리와 나는 서서히 결함으로 여기던 것을 미덕으로, 저주는 축복으로, 약점은 재능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릴리는 흐름을 타는 재능을, 나는 조직화하는 재능을 지녔다. ...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의 다른 스타일을 재능으로 인정하면서 상대의 재능을 자신의 것으로 서서히 통합해갔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엄청난 절제가 필요했다. ... 우리가 각자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상호 의존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70쪽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 챕터에서 좋았던 부분은
“공동체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77쪽
“결혼과 마찬가지로 공동체 생활에서도 상황이 순탄하지 않을 때는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 어려울 때도 공동체에 머물러 있다 보면 ‘험난한 언덕 다음에 평원이 펼쳐진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한 친구는 공동체를 ‘개인적 차이를 초월하는 법을 배우는 집단’이라고 정확하게 정의했다. ... 이 초월의 문을 여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는 차이를 즐기는 일일 것이다.” 79쪽
“나는 서른 여섯이 되어서야 진정한 공동체를 통해 ‘울음이라는 잃어버린 예술’을 다시 터득했다. ... 지금도 안전한 곳에 있을 때에만 사람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공동체로 되돌아갈 때마다 ‘눈물이라는 선물’이 되돌아오는 기쁨을 만끽한다. 내가 혼자가 아님을 느끼는 것이다. 집단이 공동체로 성장할 때 그 구성원들이 가장 흔히 하는 말은 ”여기서는 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것은 흔치 않은 느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대부분을 부분적으로만 안전하다고 느끼며 산다. ....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단숨에 공동체가 형성될 수 없다. 낯선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진정한 공동체로 성장해 나가려면, 많은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 구성원들이 속내를 털어놓아도 안전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 쏟아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 더욱 많이 더욱 솔직하게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면 드디어 방어벽이 무너진다. 벽이 무너지면 사랑과 수용이 넘쳐나고 친밀감이 증가하면서 진정한 치유와 변화가 시작된다. 낡은 상처는 치유되고, 낡은 분노는 용서되고, 낡은 저항은 극복된다. 두려움은 희망으로 바뀐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또 다른 특징은 치유하고 변화 시키는 것이다. ...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구성원들이 치유하고 변화 시키려는 노력을 멈출 줄 알아야 집단은 치유되고 변화된다. 어느 누구도 당신을 치유하거나 변화시키려 하지 않기에, 고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공동체는 바로 안전한 곳이다. 이렇게 구성원들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유를 느낀다. 그러면 방어와 가면을 버리고 자신의 심리적이고 영적인 건강을 자유롭게 추구해서, 결국은 전인적이고 신성한 자아도 찾게 된다.” 85-88쪽
10월 2째주였나? 내언니한테 이런 말을 들었다.
추석 기간 일요일에 교회 사람들 몇몇과 함께 시간을 보냈었는데 그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로 인해 너무 괴롭고 힘들었던지라(심지어 절정으로 힘든 사람과 겪었던 일이 3주정도 됐을 때..) 이 지역 사람들 너무 이상하다고 이렇게 얘기를 했었나보다. 정확한 말은 기억이 안 난다. 난 내가 이 말을 한 것도 기억이 안 났는데 언니가 내가 그랬다고 한다. (나는 지금 사는 지역으로 이사 온 지 4년이 됐고, 아예 “권”자체도 다른 곳이다.)
언니는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너무 놀랐다고 한다. 같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 지역 출신이 2명이나 있었는데 내가 그 말 했을 때 그 사람들 표정이 안 좋았다고. 그리고 예전에도 다른 집단에서 나처럼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 발언으로 그 집단에서도 어떤 두 사람이 매우 기분 나빠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지역 사람이 어떻다 이런 말 하면 안 된다고.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나빴다. 일단 나도 언니한테 하고 싶은 말들이 있지만 하지 않은 것도 있고.
언니랑 함께 하는 이 집단은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당장에 표정이 굳어지고 말도 안 했을테지만.. 참아봤다. 그리고 생각해봤다.
언니는 다른 사람 입장이 더 중요하고, 내 힘든 것은 이해하지 않는구나. 그렇지만 내가 걱정이 돼서 그렇게 하는 거구나.. 그렇지만 기분은 나쁘구나..
나는 나처럼 말했다는 사람이 갑자기 이해가 됐다.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말을 했을까? 그리고 그렇게 말했다는 건 그 사람들 안에서는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했겠구나.
“기독교인은 왜 그러냐고” 이런 질문 받으면 솔직하게 사과하는 어떤 목사님 말이 떠올랐는데
이런 얘기도 다른가? 물론 내가 이런 말 자체도 안 했다면 성숙한건가?
한달 정도 지났는데 여전히 내 마음은 상해있다.
(“우리의 상처에는 아픔이 있다.” 89쪽)
그리고 이 책을 같이 읽으면서 더 나는 “안전한 공동체”에 대한 갈망이 커져갔다.
5챕터에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단계에 대해 설명한다.
일정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사이비 공동체 -> 혼란 -> 마음 비우기 -> 공동체
사이비 공동체는 내가 생각한 이단 사이비가 아니다. 그동안 내가 경험하고 체험한 공동체였다!!! (허걱)
[사이비 공동체]
“공동체를 만들려는 집단이 가장 흔하게 보여주는 첫 번째 반응은 위장이다. 구성원들은 모든 불협화음을 피하고 서로 지나치리만치 즐겁게 지내면서 즉각 공동체가 되려고 한다. 이런 구성원들이 만들어내는 집단을 나는 ‘사이비 공동체’라고 부른다.” 113쪽
“요컨대 사이비 공동체는 갈등을 회피하고, 진정한 공동체는 갈등을 해소한다. 사이비 공동체를 진단하는 척도는 개인차를 가벼이 여기거나 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무시하는 것이다. ...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언행은 삼간다. 누군가가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화나게 하거나 짜증스러운 언행을 하더라도 아무 일 없는 듯,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의견 다툼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면, 가능한 한 빨리 부드럽게 화제를 바꾼다. 훌륭한 안주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규칙이다. 이런 규칙은 확실히 집단을 잘 돌아가게 만든다. 하지만 개성과 친밀감, 정직성을 무너뜨리고, 오래 지속될 경우 권태를 유발하기도 한다.
사이비 공동체는 개인차를 부인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위장한다. ... 사이비 공동체의 특성중 하나는 구성원들이 일반화해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혼은 비참한 일이야”, “본능을 믿어야해”,“부모님이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돼”,“일단 하나님을 알게 됐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예수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셨어” 하는 식으로 말한다.
사이비 공동체의 또 한가지 특징은 위와 같은 포괄적 진술을 서로 묵인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성원 중 누군가가 “하나님을 알게 됐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했다 하자. 그러면 구성원중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난 이십년 전에 하나님을 알았는데 여전히 두려운 걸.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안 하는게 좋을 거 같아.’ 갈등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 이런 생각을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다. ... 사실상 어떤 형태의 의견의 불일치는 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너무 크면, 소통의 경험이 풍부해서 이러한 습관이 진정한 소통에 해롭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조차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억압의 결과, ... 이간들은 겉으론 다 달라 보이는데 내면은 똑같다고 결론지을 것이다. ... 내 경험상 스스로 ‘공동체’라고 부르는 집단은 대부분 사이비 공동체인 경우가 많다. ... 사이비 공동체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대게 상투적이고 진부한 말이나 일반화에 딴지를 걸어주기만 하면 된다.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선 개인적으로 말하는 법, ‘나’나 ‘나의’로 말을 시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할 뿐 아니라 밖으로 끌어내도록 북돋우면 그 집단은 아주 빨리 두 번째 단계인 혼란으로 진행한다. 116-118쪽
[혼란]
누군가를 치유하거나 변화시키겠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는 언제나 혼란이 일어난다. ... 대체로 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한다. 그래서 타인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려는 사람은 상대가 화를 내면서 거꾸로 그를 치유하고 변화시키려 들 때까지 똑같은 행동을 열성적으로 계속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혼란은... 공동체 과정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그러므로 사이비 공동체의 경우와 달리, 구성원들이 자각한다고 해서 금방 없어지지는 않는다. ... 사이비 공동체와는 달리, 혼란 단계에서 개인차는 금방 드러난다. 하지만 개인차를 감추거나 무시하는 대신 없애버리려고 한다. ... 치유하고 변화시키려는 시도 이면에는 사랑이 아니라 구성원들을 규격대로 만들고 제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 혼란 단계는 싸우고 투쟁하는 시기다. ... 혼란 단계의 투쟁은 무질서하다. 그냥 소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비창조적이고 비건설적이기까지 하다. 118-120쪽
[마음 비우기]
“혼란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 “하나는 조직을 구성하는 것인데... 또 다른 방법은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 마음 비우기는 혼란을 극복하고 진정한 공동체로 나아가게 도와주는 다리와 같다. 사람들이 마음 비우기의 의미를 설명해달라고 하면, 나는 의사소통의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한다.
...공동체 형성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모험과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텅 비어 있는 그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 한다. 그래서 그 세계에 대한 잘못된 기대로 마음을 가득 채운다. 사실상 인간은 어떤 상황도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리고 그 경험을 자신의 기대에 꿰어 맞추려 한다. ... 대게는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온다. 특히 공동체 형성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비우고, 미리 정해놓은 틀에다 타인의 관계, 우리와 그들과의 관계를 끼워 맞추는 것을 그만둘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경청하고 듣고 혹은 경험할 수 있다.
....
예를 들어, 친구가 고통 받으면 나도 상처를 받는다. 내가 그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것이다. 요컨대 나의 가장 기본적인 치유 동기는 스스로 기분이 좋아지고 싶어서다. 그런데 여기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보통 나의 치유법이 친구의 치유법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 치유법은 친구를 더 기분 나쁘게 만들 수 도 있다. ... 사실, 친구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은 그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곁에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조차, 함께 있어주는 것이 고통일지라도 옆에 있어주는 것이 최선이다.
....
마음 비우기 단계에 들어가면, 서로의 차이를 ‘해결하거나’ 치유하거나 변화시키려는 욕망이, 편안해지고픈 자기중심적 욕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문득 혹은 점진적으로 깨닫는다. 그리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반대의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124-128쪽
두꺼운 책을 정말 어마어마하게 줄을 그으면서 읽었었다.
처음 후기 쓰려고 할 때는 좋았던 거 다 옮겨 적을테야! 했는데,,, 며칠이 지나니 의욕이,,,
아무튼 너무 좋았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주제인데.. 이 책을 통해 나도 “진정한 공동체”를 만나고 싶다는 갈망이 커졌다. 후유증으로 주변의 사람들이 좀 싫어지는? 사태를 맞았는데....!!
아무튼 지금은 공부하느라 바쁘고 나도 지친다.
걍 이렇게 보내고 싶고.
저자가 경험한 그런 공동체를 나도 꼭 만나고 싶다.
이렇게 써보니 128쪽 뒷 부분에 내가 정말 인상 깊게 읽었던 랄프 얘기가 나오고 그거 꼭 쓰고 담고 싶었는데,,, 하핫.
저자의 책들은 다시 한번씩 꼭 다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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