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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신앙

그리스도교 마음 챙김 (피터 타일러)

by 수니팡 2025.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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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의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우연히 구입했다. 품절된 책을 출판사에서 판매를 하면서 목록에 이 책이 있었는데 “마음 챙김”이라는 말이 당겨서 같이 구입했는데 기대이상이었다.
책은 얇고 작은 편인데 다 읽는데 20여일 걸렸다.

저자는 마음챙김을 찾다가 불교에도 닿았었고, 그 과정들을 설명하는데 그 부분들이 나는 좋았다. 챕터별 끝나면 기도에 대한 안내도 있고, 여러 책들이 인용됐는데 몇 권은 당장 사서 읽어보고 싶었고.
아빌라의 테레사, 토머스 머튼의 기도의 여정에 대한 소개도 좋았다.

특별히 나는 <6장 인도의 전통 -마음 챙김하는 삶 살기>가 제일 좋았다.
6장을 읽으면서 지난 수요일의 일이 떠올랐는데… 수요일 새벽부터 셋째 조카와 롯데월드를 다녀왔다. 당일치기 일정으로 힘들었다. 밤에는 셋째 조카에게 별미(나만의 라면 레시피)를 만들어 주기로 했는데 넘 피곤해서 안 하고 싶었지만 조카는 약속한 말을 안 지키면 굉장히 힘들어하는 것을 알기에 돌아와 재료를 챙겨서 언니네서 라면을 끓여줬다. 둘째 조카가 먹고 싶어 주변을 어슬렁 거리고 옆에 와도 나는 끝내 주지 않았다. 얄미워서. ^^
라면 끓이기 전에 둘째 조카에게 잔소리를 했는데 매우 기분 나쁜 표정과 말투로 나에게 답했다. (물론 나도 어린 시절 내 할 일 하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잔소리하면 기분 나빴던 기억은 있지만. 지금 보면 할 수 밖에 없는 잔소리 같긴 하다. ) 그게 괘씸했어서 라면에 관심을 가져도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안 주려는 걸 아니까 애가 방으로 들어가는데 문을 어찌나 세게 쾅 닫던지! 너무 싫었다.
어제 저녁과 오늘은 어린 애한테 그렇게까지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런 내가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다니 부끄럽고 역겹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도 이런 나를 사랑하시고 함께 하기 위해 하나님이 예수님 보내셨지.. 예수님은 이런 날 위해 죽으셨지..
그러니까 성경을 닫게 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내심 한켠으로는 그런 나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6장을 읽으면서 뭔가 나 좀 자유해져뜸.
아이한테 내 감정을 태도로 보인건 잘못한 것은 알겠고. 조심해야 하는 것도 알겠다.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한 건 아니지만 여하튼 좋았다.



카밧진은 마음챙김을 ’의도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현재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p.23

그리스도교가 생겨날 때(흔히 불리는 이름인 ’광야의 영성‘도 생겨났다. 그것은 단지 메마르고 버려진 곳에 물리적으로 머물러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살기 힘든 곳에서 사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의 일상 생활은 중독, 소비주의, 난잡함, 탐욕과 폭력을 통해 상실, 쫓겨남, 고통, 슬픔 같은 것들을 너무나 능숙하고 쉽게 가려버린다. 광야의 영성은 모든 사람에게 안락한 곳에서 나와서 그런 곳으로 가라고 권유한다. 프로이트와 융의 가르침을 접한 21세기의 자녀인 우리에게 광야란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고 더 원시적이고 근복적인 충동과 욕망이 우세해지는 무의식의 장소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역설의 영성이다. 왜냐하면 신이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기로 선택한 곳은 바로 우리가 가장 피하려 하는 불편한 곳이기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구하려는 생수를 발견할 곳은 여기다. 숲, 도시, 초목으로 뒤덮은 곳이 아니라 땅 위에서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서 방치되고 메마르고 생명을 잃은 곳이다. p.47-48

기도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 되는 데 있어 기도가 근본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p.69

우리는 인간으로서 삶을 지나치게 영성화하거나 과도하게 물질화하는 양극단 사이의 길을 간다. 양극단은 모두 위험하다. …카시아누스는 ’양극단은 일치한다‘는 고대 그리스의 격언을 인용하고 … ’무엇이든 지나친 것은 악령에게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재산에 대한 욕심에서 이탈하고, 끊임없이 겸손하려 하고, 무엇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이런 양극단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p.120

파울러에게 중년인 사람의 심리치료는 “그 과제가 지니고 있는 영적인 본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사랑과 용납의 정신에 의존하지 않는 한, 그리고 치유와 용서의 정신에 의존하지 않는 한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신앙의 변화> 94쪽) p.220

이 책에서 내내 말했듯이 그리스도교 전통에는 이런 미묘한 인생의 단계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확고한 자원이 있다. 그런 이유로 칼 융은 그리스도교 전통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 새로운 관점의 필요성, 인지적 불확실성으로 들어가기, 모호함과 역설의 웅요성, 예술적.창조적 잠재력의 회복, 관계적이고 리비도적인 것과의 재연결이다. …..마음챙김하는 관상의 삶을 나서는 모든 이에게, 일상적인 작은 에고가 더 큰 의미의 자아에게 길을 내주고 반드시 물러나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그때 반드시 초월적인 영역과의 만남이 일어난다. …. 마음챙김 운동은 아직 비교적 초기이므로 그런 점이 명백해지려면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지만, 오래된 세계 종교들의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성배의 성에 들어가야 하는 때가 언젠가 반드시 닥칠 것이고, 언제나 그렇듯 예상치 못한 사회 상황을 마주치게 될 때 미리 준비해주면 도움이 될 것이다.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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