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렌스 신부는 명상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를 상고하면서 "우리가 명상할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한다."라고 말하였다.
물론, 지당한 말이다. 명상 수련은 사실 자기에 대해 죽는 진정한 경험이다. 그러나 의지의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좀 더 깊은 어떤 근본적인 수준, 다시 말해 우리의 핵심적인 정체감과 그 정체감을 계속 유지시키는 자아를 처리하는 방법의 수준에서 그렇다. 우리가 명상으로 들어갈 때, 그것은 적어도 에고의 시각에서 보면 "작은 죽음"과 비슷하다. 이것이 에고가 처음에 그토록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이다. 우리는 혼잣말, 내적 대화, 두려움, 욕구, 필요, 선호, 백일몽, 환상들을 가게 놓아둔다. 이 모든 것은 다만 "생각들"이고, 우리는 그것들을 가게 놓아두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줄곳 그것과 더불어 머물기를 바라는 그 마음의 경향성에서 손을 떼면서, 단순히 더 깊은 살아 있음에 우리 자신을 맡긴다. 이런 의미에서 명상은 앞으로 일어날 우리 자신의 죽음의 순간을 위한 작은 리허설이다. 에고가 더 이상 우리를 붙잡지 못하는 때가 온다. 그러면 우리의 정체성은 존재 자체의 자비에 맡겨진다. 이것이 “자신의 목숨을 잃는" 실존적인 경험이다.
… 20분가량 앉아 있던 끝에, 종이 울릴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20분 동안 우리는 이승에서 자신을 붙잡고 있지 않았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존재한다. 무엇인가가 우리를 붙잡았고 우리를 떠맡았다. 우리가 점점 신뢰하게 되는, 이 동일한 무엇인가는 죽음의 시간에 우리를 지탱하고 인도할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 진정으로 이것을 아는 것이 부활 생명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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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어메이징!!
지금 향심기도 4주차.
더 집중하고 싶어진다.
<마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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